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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레전드 일본 감독 - 2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적인 레전드 일본 감독 2편을 소개합니다.

 

후카사쿠 킨지

 

대표작 : 『인의없는 전쟁』시리즈

 

1930년에 태어난 후카사쿠 킨지는, 일대 예술 학부를 졸업하고 토에이에 입사해, 1961년의 「풍래방 탐정·아카타니의 참극」으로 감독 데뷔했습니다. 이 작품은 지바 신이치(千葉新一)의 첫 주연 영화이며, 앞으로도 지바(千葉)와 콤비를 이뤄 히트작을 많이 만들어 내게 됩니다.

 

후카사쿠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한 것이, 1973년부터 시작되는 「인의 없는 전쟁」의 시리즈 5부작입니다. 히로시마를 주무대로 발발한 야쿠자 항쟁을 그려 공전의 대박을 터뜨리며 액션과 야쿠자 영화의 명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 되었습니다.

 

그 후 1982년의 「카마타 행진곡」으로 각 영화상을 석권해 수많은 화제작에 임한 것 외, 텔레비전에서도 「필살 시리즈」등에서 그 수완을 발휘합니다. 2003년 시리즈 세 번째 <배틀로얄 II 진혼가> 완성을 기다리지 못하고 급서한 이후 이 작품이 유작이 되었습니다. 그 참신한 영상 세계는 타란티노나 존 울라에 신봉되고 있습니다.

 

오카모토 키하치

대표작 :  『육탄』

 

오카모토 기하치는 대학 졸업 후인 1943년에 도호에 입사합니다. 조감독이 되었지만 소집을 통해 육군공병학교에 입대해 그대로 종전을 맞았다는 체험이 이후 작풍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전후, 도호에 복귀해 나루세 미키오나 마키노 마사히로등 밑에서 경험을 쌓아 1958년에 「결혼의 모든 것」으로 감독 데뷔했습니다. 전쟁과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한독립우연대등 수작을 발표하였으며, 특히 1968육탄은 일본영화사에 남을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1991년 『대유괴 RAINBOW KIDS』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뇌경색 등으로 인해 무대에 서는 일은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2005 81세의 나이로 타계하여, 유작은 2002년 공개된 "조타치야 조로쿠"가 되었습니다. 해외에도 팬이 많아, 2007년에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오카모토의 특집이 상영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2016년에 개봉한 「신고질라」에서는 중요 인물로서 특별 출연. 얼굴 사진만 있는 등장이지만, 제대로 엔드 롤에도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마무라 쇼헤이

대표작 : 우나기

1983년의 「나라야마 세츠코」와 1997년의 「장어」로 칸 국제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것이 이마무라 쇼헤이입니다. 1951년 마쓰타케에 입사 한 후에는 가와시마 유조(川島由三)를 사사하고 오즈 야스지로의 조감독으로 근무 했습니다.

 

1954년에는 가와시마와 함께 니카츠로 옮겨가게 됩니다. 가와시마가 떠난 뒤에도 그대로 있다가 1958년 『도둑맞은 욕정』으로 감독 데뷔를 했습니다. 그 후 독립할 때까지 『일본곤충기』나 『붉은 살의』와 같은 걸작을 닛카츠에서 남겼습니다.

 

1975년에는 현재의 일본 영화 대학의 전신인 요코하마 방송 영화 전문 학원을 개교해, 미이케 타카시사와 모토히로 카츠유키, 이상일등 그 후의 영화계를 지지하는 다수의 인재를 낳는 기초를 쌓은 것도 이마무라입니다. 영화계에 지대한 공헌을 해, 2006년에 79세의 나이로 타계했습니다.감독 작품 수는 20개로 과작이지만 걸작이 많음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나루세 미키오

 

대표작 : 부운

1905년 도쿄에서 태어난 나루세 미키오은, 마츠타케 가마타 촬영소의 소품 담당으로서 캐리어를 스타트했습니다. 조감독을 거쳐 1930년 사일런트 영화 찬바라 부부로 감독 데뷔합니다. 도호의 전신인 PCL 영화제작소로 옮긴 뒤에는 계속해서 수작을 다루기 시작했고, 점차 그 특출한 재능에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쿠로사와 아키라가 나루세의 조감독을 맡은 적도 있습니다.

 

1955년에 발표한 <부운>은 전후로 살아가는 남녀의 절절한 관계를 그리고 일본 영화 역사에 남을 불후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의 조감독을 아직 젊은 오카모토 기하치가 맡고 있던 것도 유명합니다.

 

여배우를 빛나게 하는 연출에서는 나루세의 오른쪽에 나오는 것은 없다고 말해지고, 특히 타카미네 히데코와는 다수의 작품으로 콤비를 이뤄 많은 수작을 배출했습니다. 1969년 타계했지만 명성은 사후 더 높아졌고 특히 유럽에서는 오즈, 미조구치, 구로사와와 동렬하는 거장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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